대학원 생활을 마치고 새 직장에서 일하고 나서부터 완전히 다른 라이프 사이클을 가지게 되었다.


보통 8시 전후에 일어나 씻고 준비한다. 9시에 회사에 출근한다 (회사와 집은 차타고 10분 거리).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점심 시간 (12시)이 되면 잠시 집에 와서 와이프하고 점심을 먹고, 아기랑 조금 놀아주다가 다시 회사에 간다 (1시). 다시 회사 일 하다가 6시가 되면 집에 간다. 

집에 가면 아기랑 산책을 하고 7시 정도에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고 아기랑 또 1시간 넘게 놀아주다보면 9시가 넘게 되는데, 그 때가 되면 아기를 재우기 시작한다. 한 밤 10시쯤 되면 아기가 자기 시작하는데, 그 때부터 회사네트워크 원격 접속을 해서 회사 일을 하던지, 내 개인적인 일(박사 때 남은 결과물 가지고 저널 쓰기 등등)을 하던지 그러다가 새벽 1시 쯤 되면 잠을 자러 들어간다.

그리고 주말엔 당연히 회사에 가지 않는다.

허구언날 월화수목금금금 하며 밤 12시 이전에 퇴근하지 않는 삶을 살며 대학원 생활을 했는데, 그 과정이 끝나고 갑자기 사람답게 살게 되니까 아직도 적응을 못하고 있다.

그래도 이제 교수의 메일에 가슴 졸이지 않으며 살아도 되고 (학교를 떠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핸드폰 VIP 목록에서 교수 이름을 지운것이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삶에서 해방이 되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육아가 쉬운것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기랑 함께 놀아주는 것은 좋다. 하루하루 점점 친하게 되는게 눈에 보이고..적어도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얘는 15년 후 사춘기가 되었을 때 "아빠가 지금까지 해준게 뭐있어!" 하면서 대들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

한국에 계속 살았으면 내가 과연 아이를 키울 염두를 냈을까? 물론 모든것이 가정에 근거한 일이지만, 회사에 가봤자 맨날 밤 9시 넘어서 아기가 잘 때 들어오는 삶을 계속 했었을 듯 싶은데.. 아빠 얼굴 기억 못하는 얘를 키우느니 차라리 딩크 족이 되거나 아니면 독신으로 내 삶을 즐기면서 살았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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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성 저널 (Journal)  (0) 2017.10.04

몇 주 전에 저널(Journal) 한 편을 개재했다. 대학원생이 저널 내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저널은 나에게 참으로 의미가 있는 저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개재되기까지 자그마치 "3년 넘게" 걸렸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근성으로 썼다 할 수 있다.

물론 학회 논문보다는 저널이 개재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노력이 많이 필요하긴 하다. IEEE (전기전자기술자협회)의 경우, 학회는 보통 4장만 쓰면 되지만 (ISSCC는 그림까지 합쳐서 2장, 하지만 되기가 어렵지 ㅠ), 저널일 경우 기본이 8-10장 정도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분량이 2배이니 데이터를 정리하고 글을 쓰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제출하고 나서도 일이다. Peer-review라고 해서 리뷰어들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학회논문도 마찬가지이긴 한데...학회는 제출된 논문들을 가지고 TPC멤버들이 모여서 이것을 패스시킬지 리젝 먹일지 고민하는 한편, 저널 같은 경우 논문 한편당 리뷰어가 최소 2명 (보통은 3명)이 붙어서, 논문을 심사한다. 

그 과정도 까다롭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리뷰어는 1-2달 정도 주어진 시간동안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고 다음의 선택지에서 하나를 고른다.

1) Accept without revision (바로 개재)
2) Minor revision (괜찮은 논문? 물론 수정사항이 조금 필요하다)
3) Major revision (논문이 나쁘지는 않은데, 수정이 많이 필요한 경우)
4) Reject (논문이 별로인 경우..물론 이것 역시 바로 리젝도 있고, 한번더 기회를 주는 리젝도 있다)

보통은 2번 아니면 3번이다. 하지만 이 부분도 골 때리는게, 리뷰어 3명의 의견을 평균 내서 전체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점수를 기반으로 결론을 내린다. 예를 들어 리뷰어 2명이 minor revision을 냈더라하더라도, 리뷰어 1명이 reject을 내는 경우 그 논문은 끝이라는 이야기이다.  

리뷰어 3명이 동시에 2번 또는 3번이라는 결론을 내어도 정식 개재는 아니다. 리뷰어들이 수정사항 또는 질문들을 한 바가지 적어서 보내주는데, 보통 10개에서 20개, 많으면 30개 정도- 그 질문 하나 하나에 대해서 답변을 해야한다. 
 
그러다 보면 2-3달 시간이 지나는 것은 일도 아니고, 답변을 보내도 리뷰어들이 2차 질문/수정사항을 보내주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하염없이 시간만 흐르게 된다. 그래서 보통 논문을 제출하면 정식 개재되는데만 짧으면 3-4개월, 보통은 6개월도 걸린다.

그리고 어디 또 그 뿐인가. 일단은 지도교수가 저널을 내고 싶어야 논문을 제출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자 바로 여기에서 국내 대학원과 해외 대학원이 나뉘어지게 된다. 한국 같은 경우, 논문 실적이 교수 평가 기준에 들어가기 때문에, 교수들은 어떻게든 저널을 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국내 대학원생들 논문 실적이 대부분 좋다. 그 대신 해외 학회 논문은 실적에 포함이 안되어서 별로 안 쓰려는 경향이 있다)

그에 비해 해외 대학원의 경우 논문 실적이 교수 평가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어가긴 하는데 한국처럼 절대적이지 않다. 논문 실적보다는 프로젝트를 몇개나 더 따왔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도 테뉴어 받으면 필요없기 마련이고..물론 테뉴어 받은 이후에도 돈 따러 다니기 위해선 저널이 필요하긴 한데 (스폰서를 설득하기 위해서), 한국처럼 논문을 찍어내는 수준은 필요없고, 잘 쓴 저널 1-3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다보니 저널을 쓰는데 있어서 한국 교수들 마냥 aggressive 하지가 않다.

aggresive 하지가 않으니 당연히 교수의 기준은 높아만 진다. 결과를 가져오라고 해서 결과를 가져오면 왜 이렇게 별로냐고 뭐라고 하고, 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면 몇달 뒤에 새로운 디자인 나가는데, 그것으로 새로 측정을 해서 새로운 데이터로 내자고 하고..그라다보니 내가 맨 처음 썼던 논문에 비하면 현재 논문은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되었다.. 한국이라면 최소 2편으로 나눠서 냈을수도 있을텐데..쩝.. 이 피 말리는 과정은 작년에 썼던 포스팅에 더 자세히 적혀있다 (http://etha.egloos.com/5978415)

아무튼 논문 쓰는 기간만 3년이 넘게 걸리고, 최종 워드 버전은 63번째 버전이 되어버렸다. 내 주변에서도 이 정도로 오래 교수가 질질 시간을 끌어가면서 저널을 썼던 사람은 없었던듯 싶다;;




아무튼 정식으로 개재가 되었으니 링크는 달아야지- 안타깝게도 졸업하면서 IEEE 에서 마음껏 다운로드 받을수 있는 계정까지 정지된 상태라, 내 논문을 첨부할수는 없다 ^^;; 1저자인 내 논문을 내가 못보네;;




이공계 논문 이야기이니까 과학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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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이후의 삶  (0) 2017.10.04



When I look back my graduate school years, there are few things that I wished did not happend. First of all, I had so much trial and errors, which led to so many failures. Also, the entire program took longer time than I thought.

But there are some things that I'm glad it happened. It is the fact that I got to work on the research project I really liked, and I want to thank my advisor Dr. B for giving me this wonderful research project.

Dr.A for giving me this wonderful research project.


지나왔던 대학원 과정을 돌아볼 때, 몇 가지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던 일들이 몇 개 있어요.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것은 너무나도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전체 대학원 과정을 끝내는 것 역시 원래 계획보다 더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학원 과정 동안 일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일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재미있어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죠. 그리고 이러한 연구 프로젝트를 할 수 있게 해 주신 B 지도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드리고싶습니다.


Ph.D. defense를 마치고 감사의 말씀(acknowledgement)을 할 때 했던 말이다. 저 말을 하면서 지난 수년간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대학원이 이제 끝난다니, 기분이 너무 묘했다.


대학원 유학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기나긴 미국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항상 부족한 정보 때문에 불편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는 물론 많았지만, 너무나도 단편적인 사실과 개인적인 경험을 나열한 것에 불과했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대학원 과정을 막 끝내어가는 지금, 한번 예전 기억을 되살려서 "나의 미국 대학원 chronicle"을 써보고자 한다. 일단 과거를 되돌아보며 쓰는 글이기에, 훨씬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20대 중후반과 30대 초반을 불태웠던 시절인만큼, 한번 자세한 기록을 남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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